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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과 존재

우리는 저마다 다른 우주를 살고 있다. 모든 의식은 서로 다른 파라미터로 작동한다.

J
Words by JUNGHUN KIM with AI

서문

우리는 저마다 다른 우주를 살고 있다. 모든 의식은 서로 다른 파라미터로 작동한다. 같은 붉은 장미를 보더라도, 당신의 시신경과 뇌가 해석하는 빨강과 내가 느끼는 빨강이 동일한 질감(Qualia)이라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이 근원적 차이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0과 1처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경험은 모호하고 연속적인 흐름이며, 그 불확실성 속에서 매 순간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 “알 수 없음”이 출발점이다.

이 글은 단순한 사변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원리를 제안하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가설들을 검토하며, 경쟁하는 관점과 비교하고, 실천적 함의까지 추적한다.


1. 의식의 병목

우리가 느끼는 고독은 생물학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흔히 인간이 “멀티태스킹”을 한다고 말하지만, 인지과학에서 보이는 그림은 조금 다르다. 의식적 처리의 용량은 매우 제한적이며,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실제로는 주의를 빠르게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1 반면 무의식적 처리, 즉 자율신경계가 관장하는 심박수 조절, 호흡, 소화, 체온과 같은 기능은 병렬로 지속적으로 수행된다.2 자세 유지와 같은 복잡한 운동 조절도 대부분 자동적·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3

그러나 “의식”이라는 무대 위로 올라오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 좁은 병목을 통과하기 위해 뇌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압축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가 “본다”고 느끼는 시각 정보는 망막에 맺힌 상 그 자체가 아니라, 뇌가 과거 경험과 기대를 동원해 편집한 결과물이다.4 환영, 착시, 맥락 의존적 지각은 뇌가 “실제로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예측하고 보완하는 것”에 가까운 존재임을 보여준다.5 시각은 단순한 감각이라기보다 적극적인 “해석”에 가깝다.

여기서 하나의 전제를 명시해둘 필요가 있다.

“뇌는 정보를 계산하고 압축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계산주의(Computationalism), 혹은 마음의 계산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의 가정이다.6 뇌를 일종의 정보 처리·압축 시스템으로 보는 전제 없이는 이후의 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감각 입력은 그대로 저장되지 않고, 예측과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효율적으로 코딩·요약된다. 효율적 코딩 가설에 따르면, 감각계는 환경 통계에 맞추어 중복을 줄이고 정보량을 압축하도록 진화·발달해 왔다.7 예측 코딩 모델은 시각 피질이 “예측–오차” 구조로 세계를 압축해 표현한다고 본다.8

결론적으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편집한 “요약본”을 살고 있다.


2. 예측하는 뇌, 함수가 된 인간

뇌가 세상을 요약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패턴을 찾는 것이다. 특히 타인을 마주했을 때 이 기능은 생존과 직결된다.

서로의 파라미터가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속마음은 영원한 블랙박스다. 저 사람이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알 수 없다. 원시 환경에서 이런 불확실성은 곧 위험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예측해야 했다.

역설은 여기서 발생한다. 타인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결국 우리 자신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원활하게 상호작용하기 위해, 우리는 약속된 패턴을 학습하고 내면화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는 입력(Input)에 대해 정해진 출력(Output)을 반환하는 함수(Function)가 되기를 자처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입력에 “반갑습니다”라는 출력을 거의 자동으로 내놓는 식이다. 서로를 더 쉽게 예측하기 위해, 스스로 예측 가능한 기계가 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완전히 기계적인 함수는 아니다. 어떤 때에는 사회적 스크립트에 순응하고, 어떤 때에는 그 스크립트를 깨뜨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자신을 일정 부분 “함수화”하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내가 함수가 되는 과정은 고립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 기대, 반응이 먼저 있었고, 나의 “함수적 자아”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형성되었다. 순서가 중요하다.


3. 분류 체계의 한계

함수화된 삶이 제공하는 것은 안정감이다. 이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분류법”이라는 도구에 의존한다. 선과 악, 성공과 실패, 아군과 적군. 이분법적 틀은 복잡한 세상을 순식간에 정리해주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그러나 실제 경험은 아날로그처럼 연속적인 반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개념은 디지털처럼 이산적(discrete)이고 투박하다. 부드러운 연속체 위에 거친 격자를 씌우는 셈이다. 사회적 범주화와 고정관념(stereotype)이 복잡한 사람들을 몇 가지 라벨로 과도하게 단순화할 때, 우리는 이 격자의 한계를 목격한다.9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사유에 도달하려면, 이 안락한 분류 기준을 깨부수어야 한다. “기존의 분할 방법은 틀렸다”는 과격한 가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서부터 세상을 다시 정의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 우리는 병목을 가진 의식 위에서,
  • 외부 세계를 압축·예측하며,
  •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함수처럼 길들여진 패턴을 내놓으며 산다.

이 모든 사실은 “독립된 개체”보다는 상호작용, 즉 연결을 중심으로 세상을 다시 그려볼 여지를 준다. 이제 나는 이 직관을 한 문장으로 응축한 하나의 원리를 제안하려 한다.


4. 원리의 제안: 연결이 개체에 선행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제안한다.

“연결이 개체에 선행한다.”

고립된 자아가 먼저 존재하고 이후에 타자와 연결된다는 통념을 뒤집는 것이다. 오히려 연결의 그물망이 먼저 있고, “나”는 그 그물망의 매듭점으로서 사후적으로 출현한다는 주장이다.

4-0. 이 글에서 말하는 “연결”의 의미

“연결”이라는 말을 너무 넓게 쓰면, 그 자체로 아무 말도 안 되는 개념이 된다. 이 글에서 최소한 다음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1. 상호작용: 두 시스템(사람, 집단, 세대, 신경세포 등) 사이에 정보·정서·영향이 오가는 것
  2. 반복과 제약: 그 상호작용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상태 공간을 제약하고, 행동 가능성을 형성하는 것

유전자 전달이나 단 한 번의 물리적 충돌 같은 것도 아주 넓게 보면 연결이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정보·정서·행동 패턴이 반복적으로 주고받아지는 관계를 가리킬 때 “연결”이라는 말을 쓴다. 맥락이 달라질 때마다 의미를 조금씩 더 구체화할 것이다.

4-1. 원리(Principle)로서의 지위

용어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을 “공리(Axiom)”라고 부르지 않는다. 공리는 정의상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원리는 그 자체로 직접 시험대에 올릴 수는 없지만, 파생되는 경험적 가설들의 성패를 통해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원리(Principle)는 세계를 바라보는 프레임이다. 참/거짓을 직접 판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낳는 예측들이 계속 맞아떨어지면 유용한 프레임이고, 계속 빗나가면 폐기해야 할 프레임이다.


4-2. 파생 가설들

“연결이 개체에 선행한다”는 원리에서 도출되는, 반증 가능한 가설들을 세워본다.

가설 H1: 자아 개념은 타자 인식 이후에 형성된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 개념”은, 단순한 신체감각이나 주체감(“내가 움직인다”, “이 몸이 내 것이다”) 같은 **최소 자아(minimal self)**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반성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개념적·서사적 자아(self-concept)**를 가리킨다.

발달심리학의 증거가 있다. 영아는 생후 18개월 전후에 거울 속 자신을 가리키며 “나”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10 그런데 이보다 앞서, 생후 수 개월부터 이미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고, 타인의 정서적 반응을 모방하며, **공동 주의(joint attention)**를 형성한다.11 타인과 함께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타인의 정서에 동조하는 능력이 자기 인식보다 선행하는 것이다.

  • 지지 증거: 거울 자기인식(mirror self-recognition)과 공동 주의 발달 연구들.1011
  • 반증 조건: 타자 인식 없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개념적 자아 개념이 먼저 형성되는 사례가 발견되면 기각된다.

가설 H2: 극단적 고립은 자아를 해체한다

야생 아동 사례들이 있다. 극심한 사회적 박탈을 겪은 아이들은 언어와 사회적 기술뿐 아니라, 자기를 타인과 구분된 인격으로 경험하는 능력에도 심각한 결손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또한 감각 차단 실험이나 장기간의 극단적 고립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경계가 흐려지거나, 현실 감각이 붕괴되는 경험을 보고한다. 사회적 배제와 고립이 자존감과 자기평가를 심각하게 손상시킨다는 연구도 꾸준히 축적되어 있다.1314

  • 지지 증거: 사회적 배제와 고립이 자존감·자기평가·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연구들.1314
  • 반증 조건: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도 온전한 자아가 유지되거나 형성되는 사례가 일관되게 보고되면 기각된다.

가설 H3: 신경망의 자기조직화에도 외부 입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양쪽에서 테스트 가능하다.

  • 감각 입력 없이 발달한 시각 피질은 정상적 기능을 획득하지 못한다. 고전적인 시각 박탈 연구에서, 특정 시기에 한쪽 눈을 가리거나 양쪽 눈을 차단하면, 시각 피질의 연결 구조와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손상된다.1516
  • 인간에서도, 영아기에 적절한 시각 입력이 없으면 시력과 시각 피질 발달이 심각하게 저해된다.17
  • 인공신경망도 충분한 데이터 없이 의미 있는 표상을 형성하지 못한다. 딥러닝 모델은 방대한 훈련 데이터를 통해서만 유용한 특징을 학습할 수 있고, 데이터가 없으면 “유의미한 자기 조직화”는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다.18
  • 지지 증거: 시각 피질의 경험 의존적 발달과 인공신경망의 데이터 의존적 학습.15161718
  • 반증 조건: 외부 입력 없이 자기조직화를 통해 의미 있는 내적 구조가 출현하는 복잡한 학습 시스템이 발견되면 기각된다.

현재까지의 경험적 증거는 대체로 이 가설들을 지지한다. 가설들이 지지될수록, 상위의 원리는 “유용한 프레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연결”의 정의가 지나치게 넓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유전자 전달도 연결, 물리적 상호작용도 연결, 양자 얽힘도 연결—이렇게 확장되면 가설들은 다시 반증 불가능해진다. 엄밀함을 유지하려면 각 맥락에서 “연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위에서처럼 계속 명시해야 한다.


4-3. 경쟁 원리와의 비교

“연결이 개체에 선행한다”는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전통적인 대안이 있다.

“개체가 연결에 선행한다.”

먼저 독립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고, 그 자아들이 이후에 관계를 맺는다는 관점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근대적 주체 개념이 이 계열에 속한다.

두 원리를 몇 가지 현상에 대입해 설명력을 비교해본다.

  1. 야생 아동·발달 박탈 현상

    • 극단적 고립이 자아 형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연결 선행” 원리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다.121314
    • “개체 선행” 원리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자아가 왜 관계 결핍만으로 심각하게 손상되는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2. 유전적 기질

    • 태어날 때부터 보이는 기질 차이는 “개체 선행”에 유리해 보인다.
    • 그러나 “연결 선행” 관점에서 유전자는 이전 세대와의 연결이 물질화된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내 기질은 고립된 “내 것”이라기보다, 계통 전체의 환경·스트레스·영양 상태가 에피제네틱 메커니즘을 통해 나에게까지 이어진 결과이기도 하다.1920
  3. 관계 단절 시 자아 붕괴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혼, 사회적 배제, 추방의 경험이 자아 정체성을 흔든다는 것은 널리 관찰된다.1314 특히 연인 관계의 해체는 자기개념의 내용과 명료성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21
    • “연결 선행” 원리에서 이것은 당연하다. 매듭을 지탱하던 끈이 끊어진 것이다.
    • “개체 선행” 원리에서는 왜 외부 관계가 내부 자아에 그토록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해야 한다.
  4. 명상 중 “무아” 경험

    • 다양한 명상 전통에서 보고되는 자아 경계의 용해 경험은 “연결 선행”과 정합적이다. 자아가 원래 관계와 상호작용의 구성물이라면, 그 구성이 일시적으로 이완될 때 “무아” 혹은 **자기 경계의 해소(self-boundary dissolution)**가 경험될 수 있다.22
    • “개체 선행”에서는 이것이 본래 자아의 일시적 장애나 예외적 상태로 처리되어야 한다.
  5. 일상적 직관 (“나는 나”)

    • 여기서는 “개체 선행”이 유리하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신을 독립된 단위로 경험한다.
    • “연결 선행”은 이 직관에 반하므로, 왜 그런 직관이 생겨나는지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효율적으로 의사결정하기 위해 “단일한 행위자”라는 자기 모델을 만들어 쓰는 것일 수 있다.

종합하면, “연결 선행” 원리는 더 적은 예외 처리로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한다. 다만 일상적 직관과의 충돌은 남는다. 이것은 설명해야 할 현상이지, 원리를 기각할 이유는 아니다. 한때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도 일상적 직관에 반했다.


4-4. 실천적 함의

원리의 가치는 참/거짓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채택했을 때 사유와 실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중요하다.

윤리: 해악의 단위가 달라진다

“개체 선행” 패러다임에서 해악은 개인에게 가해지는 손상이다. “연결 선행” 패러다임에서 해악은 관계의 훼손이다.

  • 살인은 한 개체의 소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매듭으로 삼던 모든 연결망의 찢어짐이기도 하다.
  • 환경 파괴는 미래 세대와의 연결을 끊는 행위다.1920
  • 사회적 배제는 개인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공동체의 연결 구조를 약화시킨다.1314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관계만 좋으면, 그 관계 안에서의 폭력은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연결을 기본 단위로 보더라도, 그 연결을 구성하는 개체들의 취약성과 권리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어떤 연결들의 교차점인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연결들의 교차점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정체성은 발견해야 할 내면의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 가족, 친구, 연인, 동료,
  • 세대와 문화,
  • 언어와 기억

같은 관계들의 배치가 만들어낸 패턴이다.

그래서 정체성은 더 유동적이고 덜 본질주의적인 것이 된다. 관계가 바뀌면, 나도 바뀐다. 실제로 친밀한 관계가 시작되거나 끝날 때, 자기개념의 내용과 명료성이 크게 재구성된다는 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21

책임: 개인 vs 시스템

“연결 선행” 관점에서는 개인 책임론과 시스템 책임론 사이의 균형점이 이동한다.

  • 범죄자 개인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그 개인을 그렇게 만든 연결망(가정, 교육, 경제 구조, 차별 등)도 함께 봐야 한다.
  • 그렇다고 개인의 책임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매듭도 그물의 일부지만, 매듭 자체의 강도와 위치도 중요하다.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 개체의 소멸을 넘어

개체의 소멸이 전부가 아니다.

그 사람이 맺었던 연결들, 남긴 영향들, 기억 속의 자리—이것들은 생물학적 죽음 이후에도 계속 작동한다. 물론 전통적 의미의 불멸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관계의 패턴으로 본다면, 그 패턴의 일부는 확실히 살아남는다. 유전자·에피제네틱 흔적·관습·언어·기억으로,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1920


5. 전체의 일부라는 자각

이제 결론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세상에 의해 어떻게 행동할지를 지시받는다.”

이것은 시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에서 도출된 명제다. 연결이 개체에 선행한다면, 나의 행동은 처음부터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지시받는다”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공동으로 구성된다”로 바꿔도 좋다.

이것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패배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좁은 자의식의 벽을 허물고, 거대한 시스템의 유기적 일부임을 인정하는 연결감의 표현이다.

나의 고유한 파라미터조차 수많은 타인과 세대 간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었다.1920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 고립된 채 불안해하지만, 실은 서로를 예측하고 반응하며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상의 지시를 받는 존재임을 자각할 때, 역설적으로 “나 혼자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더 큰 흐름에 몸을 맡기되, 그 안에서 어떤 태도로 응답할지는 여전히 나의 몫으로 남는다. 그것이 이 글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자유다.


결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세상이 보내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태도로 반응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원리가 궁극적으로 옳은지는 알 수 없다. 원리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채택하고 살아볼 수는 있다. 그렇게 살았을 때 세상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고독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딱 그만큼의 자유.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록: 논증 구조 (요약)

전제

  1. 뇌는 정보를 계산하고 압축하는 시스템이다 (계산주의, 효율적 코딩, 예측 코딩 등).678
  2. 의식은 병목 현상을 가진다 (주의·작업기억 용량의 제한).1

중심 원리 (프레임, 직접 반증 불가)

  • 연결이 개체에 선행한다.

파생 가설 (반증 가능, 원리의 간접 평가 수단)

  • H1: 개념적 자아 개념은 타자 인식·공동 주의 이후에 형성된다.1011
  • H2: 극단적 고립과 사회적 배제는 자아 구조와 자기평가를 해체하거나 약화시킨다.121314
  • H3: 신경망의 자기조직화에는 외부 입력이 필요하다(시각 피질·인공신경망).15161718

원리의 평가 기준

  • 파생 가설들의 경험적 지지 여부
  • 경쟁 원리(개체 선행) 대비 설명력
  • 채택 시 사유·실천의 유용성

도출된 주장

  • 우리는 예측 기계로서 상호 구성된다.
  • 기존의 분류 체계는 연결성을 가린다.
  • “세상에 의해 지시받음”은 연결성의 자각이다.
  • 남은 자유는 태도의 선택이다.

열린 질문

  • “연결”의 정의는 맥락마다 명시되어야 한다.
  • 일상적 직관(“나는 독립된 나”)과의 충돌은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 원리의 실천적 채택이 가져오는 변화는 경험적으로 관찰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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